목. 6월 4th, 2026

오르는 건 늘 소비자 몫이었다

나는 장을 볼 때 밀가루를 자주 확인하는 편이다. 라면, 빵, 과자처럼 일상에 붙어 있는 품목은 가격이 크게 체감되지 않는 것 같아도, 실제로는 한 번 오르면 꽤 오래 간다. 그래서 이번 밀가루 담합 제재 소식은 단순한 기업 뉴스로만 보이지 않았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국내 7개 제분사의 담합을 적발하고 총 6710억45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는데, 담합 사건 사상 역대 최대 규모라고 한다. 시장에서 가격을 정직하게 경쟁하지 않았다는 점만으로도 문제인데, 국민 먹거리의 핵심 원료를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더 무겁게 다가온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가격이 아니라 가격을 움직이는 방식에 있다. 원가가 오를 때는 빨리 올리고, 떨어질 때는 천천히 내리는 구조. 소비자 입장에서는 늘 불리한 방향으로만 시장이 작동한 셈이다. 사실 이런 유형의 담합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면 그냥 ‘원가 부담 탓’으로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공정위가 여러 차례의 회합과 가격·물량 합의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이번 사안은 단순한 업황 악화와는 성격이 다르다.

7개사가 움직인 시장, 점유율부터 달랐다

이번에 제재를 받은 업체는 사조동아원, 대한제분, CJ제일제당, 삼양사, 대선제분, 삼화제분, 한탑 등 7곳이다. 이들 7개사는 국내 B2B 밀가루 판매시장에서 87.7%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었다. 2024년 매출액 기준으로는 사실상 과점 구조에 가깝다. 내가 재테크를 오래 보면서 느낀 것도 비슷하다. 시장이 몇 개 플레이어에 집중되면 효율이 좋아질 수도 있지만, 반대로 담합 유인이 커지는 순간 소비자는 선택권을 잃는다.

공정위는 이들이 2019년 11월부터 2025년 10월까지 약 6년에 걸쳐 밀가루 판매가격과 물량을 담합했다고 봤다. 대형 수요처를 상대로는 공급가격과 물량을 맞췄고, 중소형 수요처와 대리점 등 전 거래처를 대상으로도 가격을 맞췄다고 한다. 총 24차례에 걸쳐 담합이 이뤄졌고, 대표자급과 실무자급 회합도 55회나 있었다. 이런 방식이면 시장은 겉으로는 경쟁하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론 미리 정해진 방향대로 흘러간다.

아래 표를 보면 공정위가 왜 이 사건을 중대하게 본 건지 구조가 보인다.

항목 내용
담합 기간 2019년 11월 ~ 2025년 10월
담합 횟수 총 24차례
회합 횟수 총 55회
시장점유율 87.7%
과징금 총 6710억4500만원

원맥 가격이 오를 때, 내릴 때의 속도 차이

이번 사건을 이해하려면 원재료인 원맥(原麥) 구조를 봐야 한다. 밀가루는 원맥을 사실상 전량 수입에 의존한다. 그래서 국제 원맥 시세가 오르면 제분사들은 원가 상승을 가격에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쉽다. 문제는 그 반영이 공정한 시장의 반응이 아니라, 담합을 통해 조율된 결과였다는 점이다.

공정위에 따르면 원맥 시세 상승기였던 2020년~2022년에는 인상폭과 시기를 맞췄고, 2023년 이후 하락기에는 하락분을 최대한 늦게 반영했다. 즉, 올릴 때는 빠르고, 내릴 때는 느린 전형적인 비대칭 가격 조정이 확인된 셈이다. 이건 소비자 입장에선 꽤 중요하다. 가격은 오르는 순간 체감되지만, 내리는 시점은 늘 늦다. 생활물가가 한번 밀리면 다시 내려오는 속도는 늘 둔하다.

공정위가 제시한 수치도 이를 뒷받침한다. 담합 시작 시점인 2019년 12월과 비교해 2022년 9월 밀가루 판매가격은 제분사별로 약 38%에서 최대 74%까지 상승했다. 이 정도면 단순한 원가 반영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게다가 상위 3개사와 하위 3개사 모두 공동행위 이전보다 영업이익률이 크게 개선됐다고 한다. 결국 담합은 ‘위기 대응’이 아니라 ‘이익 극대화’의 수단이었던 것으로 읽힌다.

📊 담합 시작 전후 밀가루 판매가격 변화

최소 상승폭 ■■■■■■■■■■■■■■ 38%
최대 상승폭 ■■■■■■■■■■■■■■■■■■■■■■■■■■■■ 74%

과징금이 왜 이렇게 컸나

이번 제재가 이례적인 이유는 금액만이 아니다. 공정위는 관련매출액을 약 5조6900억원으로 산정했고, 법 위반이 중대하다고 보고 시정명령과 과징금을 함께 부과했다. 공정위는 담합 관련 매출액의 최대 20%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는데, 이 기준을 적용하면 최대 1조1600억원까지 가능하다는 관측도 나왔다. 실제 부과액은 그보다 낮지만, 그래도 역대 최대 규모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사건이 더 주목받는 건 이들이 이미 2006년에도 밀가루 담합으로 제재를 받은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다시 담합을 했다는 건 규제가 존재해도 반복될 수 있다는 뜻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사건을 볼 때마다 느끼는 건, 제재의 강도뿐 아니라 재발 방지 장치가 얼마나 실효적인지가 중요하다는 점이다. 한 번 적발했다고 끝나는 구조라면 시장의 신뢰는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공정위는 독자적 가격재결정 명령도 부과했다. 담합으로 왜곡된 가격을 정상 수준으로 다시 산정하도록 하는 조치다. 2006년 사건 이후 약 20년 만에 다시 적용되는 조치라고 한다. 가격 변경내역 보고명령도 함께 내려져, 향후 3년간 밀가루 가격 변동 현황을 1년에 두 차례 보고해야 한다. 이런 후속 조치는 단순한 벌금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가격 구조를 다시 들여다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공정위가 빠르게 움직인 배경

이번 사건은 조사 속도도 이례적이었다. 공정위는 일반적으로 담합 사건 조사에 평균 300일 정도 걸린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4개월여 만에 마무리했다고 밝혔다. 담당 과장을 포함해 5명이 태스크포스를 꾸려 빠르게 사건을 진행했다는 설명도 나왔다. 민생과 밀접한 품목에 대해선 시장 왜곡을 오래 방치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공정위 부위원장은 국민 생활과 밀접한 식료품 가격 담합에 대해 감시를 강화하겠다고 했다. 이 발언은 형식적인 경고로만 들리지 않는다. 라면, 빵, 과자, 국수 같은 품목은 체감물가에 직접 연결된다. 내가 혼자 살면서 식비를 꽤 꼼꼼하게 보는 편인데, 이런 품목은 한 번 오르면 생활비 전체를 압박하는 방향으로 번진다. 그래서 담합은 단순히 기업 간의 부정행위가 아니라, 생활비 구조를 왜곡하는 민생 침해로 봐야 한다.

이 사건이 남긴 신호

“시장 신뢰를 훼손하며 국민 경제 발전을 방해하는 암적 존재”

대통령이 밀가루 담합을 두고 이렇게 표현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담합은 법률 위반을 넘어 시장의 신뢰를 무너뜨린다. 가격은 숫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생산자와 유통사, 소비자가 공유하는 약속에 가깝다. 그 약속이 깨지면 남는 건 불신뿐이다.

이번 제재는 제분업계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다른 생활필수품 시장에도 메시지를 던진다. 국민이 매일 접하는 품목일수록 경쟁 질서는 더 엄격하게 지켜져야 한다는 점이다. 나는 이런 사건을 볼 때마다 규제가 시장을 누르는 게 아니라, 오히려 시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바닥을 깔아주는 장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밀가루 한 포대의 가격 문제처럼 보여도, 결국은 우리 식탁 전체의 신뢰 문제이기 때문이다.

당분간 밀가루 관련 가격과 유통 구조는 더 촘촘하게 들여다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6년 동안 반복된 담합, 55회의 회합, 24차례의 실행, 그리고 역대 최대 과징금. 숫자만 놓고 봐도 이번 사건은 쉽게 지나갈 사안이 아니다. 시장은 결국 가격으로 말하지만, 그 가격이 공정하게 만들어졌는지는 전혀 다른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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